『영화-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두는 것을 말하는 'bucket list'.

10대의 후반 혹은 20대의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카터가 그 당시 철학수업에서 교수가 내 주었던 과제였다는 이 버킷리스트를,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떠 올리게 되고, 이를 본 에드먼드가 제안을 하게 되면서 죽음을 앞둔 두 남자의 재미난 여행은 시작된다.

전혀 다른 계급, 전혀 다른 인종,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남남이었던 카터와 에드워드. 이 두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같은 병실을 쓰게 된 계기로 절친한 친구가 된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카터와 화려하고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에드먼드. 하지만, 병실에 누워있는 이 두 노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병들어 있는' 죽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왔던 카터와 성공하기 위해 일만 해 온, 가족도 잃어버린 에드워드. 그들은 6개월, 길어야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본다. 그러면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 뒤늦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역사학 교수가 되고 싶었다는 유식하고도 철학자 같은 카터는 '낯선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때 까지 웃기' 등등 이런 소박하면서도 자신의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걸 적고, 속물 근성이 넘치는 에드워드는 '스카이 다이빙', '가장 예쁜 여자에게 키스하기' 등 재치 만점인 것들을 적기 시작한다. 빨간 글씨는 에드워드, 검은 글씨는 카터, 노란색 노트패드에 적은 리스트들은 스카이 다이빙, 카터가 타고 싶었던 셔비 350 자동차 그것도 경주로, 미국에서 시작한 여행은 전세계적으로 범위는 넓어져가고, 프랑스-아프리카 야생공원에서 사자 사냥, 이집트 피라미드, 타지마할, 만리장성, 히말라야 산(아쉽게도 기후 때문에 못 갔지만), 홍콩 이렇게 다녀온 뒤 두 노인은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따뜻한 가족들이 맞이하는 집으로 돌아간 카터와 커다랗지만 텅 빈, 어딘가 허전하기만 한 싸늘한 집에서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에드워드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터는 악화되고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에드워드에게  '인생의 기쁨을 찾아라'고 한다. 에드워드는 사이가 안 좋았던 딸을 찾아가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카터의 장례식에서 에드워드 콜은 연설을 하게 되며 카터에게 감사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의 비서였던, 본 이름이 '매튜'였음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라고 불리던 비서가 히말라야 정상에 커피 캔에 화장한 재를 담아 카터와 함께 놓아두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요즘 잘 팔리는 CEO들의 소위 자신들의 성공 체험담들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삶은 가족불화로 고통받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에드워드의 삶을 보니 그런 것 같다. 자신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고 자신감 넘치는 '콧대 높은' 사나이지만, 항상 가족을 꾸리지 못하고 4번의 이혼 경력까지, 게다가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하겠다는 딸까지, 노년의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돈과 권력' 뿐이었다. '병원은 헬스 스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2인 1실을 고집했던 그가 막상 반송장인 카터와 동일한 처지가 되다 보니, 자신의 삶은 무엇인가, 죽음을 앞두고 나서 되돌아보니 자신의 삶은 너무도 쓸쓸하고 오직 '돈' 뿐이었던 것. 대조적으로 카터는 비록 자동차 수리공이었지만, 항상 간병오는 아내와 자식, 할아버지가 갖고 싶었던 차의 열쇠고리를 챙겨주는 손주까지, 따뜻한 가정이다. 그는 상식도 풍부하고 여느 흑인과는 달리 '성숙되고 지적인' 한편으론 돈이 없어서, 흑인이라서, 교수가 될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가족을 위해 한 평생 살아온 그가, 자식들이 다 떠나고 아내와 남으니, 사랑한 아내는 그대로인데,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무언가가 텅 빈듯한 생각이 들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작성한 리스트는, 두 사람을 더욱 끈끈한 유대감으로 이어주게 했으며, 돈만 많았던 에드워드는 카터와 함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죽음을 맞이할 그런 용기를 가져가는 듯 하다. 그들은 '죽음을 앞뒀기에 무엇을 못 해보겠는가'라는 생각에 스카이 다이빙에 야생공원에서 총 사냥, 문신 등을 해 보면서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비록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그들의 여행은 어느 20대 못지 않게 열정적이고 즐거워 보인다. 그러면서 카터와의 대화를 통해 에드워드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하면서 돌아와서도 '자네는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았는가?'라는 뚱딴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비록 흑인이고, 자신의 꿈은 좌절 되었지만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카터'는 에드워드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되찾아 주었다. 그것은 돈도 성공도 그렇다고 해서 젊음의 열정, 탈선 이런 것이 아니라 바로 '가족'이라는 걸 되찾아 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었고, 딸과의 화해를 통해 그는 '인생의 기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랬기에 비서 매튜가 '톰'이라고 불리면서도 표정하나 꿈쩍하지 않고 버티고, 결국엔 에드워드가 죽어서도 그를 위해 위험한 '히말라야 등반'을 해서까지 그의 마지막 bucket list를 달성해주려고 하는 걸 보면, 그는 존경받았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가 눈을 감을 때, '열린 마음을 가졌다'라고 하는 걸 봐도 짐작하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감동 뿐만 아니라 많은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었는데, '흑인'인 카터가 비록 지위는 '기계공'이지만, 자식들은 '세무사' 등 잘 키워냈음을 보여주고, 백인인 에드워드가 '속물적인 근성'을 보인다는, 약간의 백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들어있어 흑인의 이미지 쇄신에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카터가 흑인이고, 돈이 없어서 역사교수가 꿈이었지만 포기해야 했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많이 남아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상류계층 - 의사라던가, 주요 임원들의 구성-이 백인으로 설정된 것도 그렇다. 에드워드 관련 인물은 대부분 백인이다. 하지만, 카터의 가족들은 죄다 흑인이고 잘 된 자식도 '세무사'정도이다. 이는 그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 사회를 다시보게 되었다. 또한, 할아버지와 같은 '기계공'이 되고 싶다는 손주를 말려달라고 하는 카터의 장남의 말에서도 약간은 '기술자를 비하하는 시각'과 함께 '흑인의 성공지향적인' 생각이 보여서 씁쓸했다. 그렇지만, 카터가 내뿜는 온화한 '인간다움'의 향기, 인문학적인 질문은 기술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물음들을 던져준다. 당신은 행복한가, 라는 비록 간단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요즘 미국의 학문 추세로 '철학'이 뜨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 돈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물질 만능주의 식의 사고'가 경제와 함께 붕괴되면서 서서히 저변으로 몰려갔던 '인문학'의 부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 그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이런 영화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주인공이 잘나가는 핸썸 가이들도 아니고, 그런다고 해서 '신데렐라' 이야기도 아니라, 우중충한 죽어가는 늙은 아저씨들 둘이가 나와서 죽음을 앞두고 아우성치는 내용인데 감동적으로 잘 그려낸 걸, 상업적으로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만들리는 없지 않는가. 뭐. 마케팅은 모르니 더 할 말은 없지만.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들의 연륜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연기는 이 영화에 같이 호응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끔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온화한 카터 역을 맡았던 배우의 모습은 참 푸근해서 좋았다. 윌 앤 그레이스에서 '잭'이라는 코믹한 케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진지한 '비서'역을 하고 있으니,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참느라 애써야만 했지만(잭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도 코믹한 연기만이 능사인 배우가 아니라 다양한 역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 영화였다.

영화는 시나리오도, 영상도, 음악도 모두 좋았다.
오랜만에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어 매우 기뻤다.
앞으로도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뱀다리. 나의 버킷리스트엔 무얼 올릴까나.

by 아퀼로스 | 2008/04/15 20:05 | 『영화감상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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